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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과 국민대 조형전 작성일 2015-06-22 ㅣ 조회수 4686

김수근문화재단 저 , 당신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 입니까 中 2006년

김수근과 국민대 조형전 - 글쓴이 : 서상우 명예교수

김수근 교수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16년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그의 흉상을 대하면서 그와 관련된 생각을 이따금씩 해 본다.
내가 국민대로 옮기게 된 것은 1976년 3월 그의 부름에 따른 것이다. 그와의 인연은 내가 1960년 국회의사당 설계경기 당선으로 귀국하여 다음 해인 61년 홍익대 교수로 부임하였을 때 사제기간이 되었으며, 안국동 연구소 시절 실습생으로 몇 개월 동안 그의 곁에서 일하면서 그의 열띤 제작과정을 지켜 볼 수 있었으며, 공간 그룹 회장직과 한국건축가협회 회장직을 지내는 동안 가깝게 도왔다. 그리고 같은 대학에서 교수직을 함꼐 하게 된 인연을 가지고 있다.
1974년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김형만 교수의 권유로 그는 건국대에서 국민대로 옮기게 되었고, 그가 부임한 다음해에 건축학과를 공학부에서 조형학부를 신설하여 디자인계열학과와 함께 본격적인 조형교육을 시도했다. 그러나 외부의 작품활동으로 학교의 일을 수행할 수 없어 나를 필요로 한 것이다. 즉 사무실은 김원석과 오기수가 보좌하고, 학교 일은 서상우가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늘 “자신은 교수직보다는 건축가로서 창작활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기런 일이 있었다. 1978년 일본 SD잡지에서 「김수근 특집」을 기획할 때 일인데 자신의 이력소개에서 국민대 조형학부장이라는 직함을 제외시킨 일이다. 나의 권유로 후에 추가 삽입되긴 하였지만 그는 입버릇처럼 교수보다는 건축가임을 강조했다.
1976년 김형만 교수는 홍익대 건축과로 이적하고, 내가 부임했는데 부임하자마자 나는 그에게 ‘조형전’을 개최할 것을 강력 주장했다. 마치 그가 홍익대에 취임하였을 때 ‘50년 후의 한국건축’이라는 전시로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듯이 국민대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학교 내에서도 간판 학부가 되어야 김수근의 역할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구상에서였다.

그에게 나는 “선생님이 지금까지는 김수근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이 대학에 오셨지만 무엇인가 업적을 남기지 않으면 건국대학 시절처럼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방법의 하나는 디자인계열의 모든 학과가 종합된 내용의 ‘조형전’을 시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했더니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시 서임수 학장에게 달려가 일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국민대 ‘조형전’은 디자인 계열의 종합전시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 제1회 전시를 미도파 백화점 전시홀에서 개최하여 성황을 이루게 되었으며, 한양대 박학재 교수께서는 학생들을 모아 놓고 “오랜만에 보는 과거의 홍익대 전시와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전시가 끝나고 지방 4개 도시를순회 전시할 수 있는 배려와 예산이 주어졌다. 당시 국민대로서는 새로운 이슈가 없던 차에 ‘조형전’의 위력이 대학을 홍보하는데 좋은 도구가 되었다. 특히 재단 사무국장이던 김창식 교수는 자신이 선발대로 나서 지방 순회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타 대학이 추종을 불허하는 예산과 후원으로 조형전을 해마다 거듭하여, 젊은 교수진과 학생들이 일체가 되어 5년 후부터 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오늘의 조형대학이 국민대학의 간판대학이 되어 우수대학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그의 명성과 더불어 국민대 ‘조형전’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3년마다 새로운 테마로 개최되고 있다.


글쓴이 : 서상우(徐商雨) 1937년생. 前 국민대 건축대학 학장. 홍익대에서 ‘현대의 박물관 건축에 관한 계획학적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前 (사)한국박물관건축학회 회장.